AI

'영화 중간계' 리뷰: 이것은 'AI 영화'가 아니라 'AI 네이티브 영화'다

blueberry-news 2025. 9. 25. 23:59

'영화 중간계' 리뷰: 이것은 'AI 영화'가 아니라 'AI 네이티브 영화'다

2025년 가을 극장가를 강타한 판타지 대작 ‘중간계(Junggangye)’는 관객들에게 경이로운 시각적 경험을 선사했다. 살아 숨 쉬는 듯한 신화 속 크리처, 광활하고 독창적인 세계의 풍경. 많은 이들이 이 놀라운 AI 시각 효과를 보며 “이제 인간 아티스트의 자리는 없는 것인가?”라는 감탄 섞인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오늘 이 글은 그 질문에 대해 “아니오”라고 단호하게 답하고자 한다. 다른 블로그들이 ‘영화 중간계 AI’의 기술적 성취만을 나열할 때, 우리는 한발 더 깊이 들어가려 한다. ‘중간계’는 단순히 AI를 ‘활용한’ 영화가 아니다. 이것은 기획부터 편집까지 창작의 모든 과정을 AI와 함께 호흡하며 만들어낸 역사상 최초의 ‘AI 네이티브 영화(AI-Native Film)’이다.

이 글은 ‘중간계’의 제작 과정을 통해 AI가 어떻게 인간의 창의성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을 더 높은 차원의 ‘감독’으로 진화시키고 있는지 그 거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심층적으로 분석할 것이다.

영화 중간계
영화 중간계

1. 프리 프로덕션: ‘AI 컨셉 아티스트’와 함께 세계를 창조하다

전통적인 영화 제작에서 ‘프리 프로덕션’ 단계는 가장 느리고 비용이 많이 드는 과정 중 하나였다. 감독의 머릿속에 있는 추상적인 세계관을 구체적인 이미지로 시각화하기 위해 소수의 컨셉 아티스트들이 수개월에 걸쳐 그림을 그려야 했다.

하지만 ‘중간계’ 제작팀은 이 과정을 완전히 뒤집었다. 그들은 Midjourney, Imagen과 같은 생성형 AI를 ‘지치지 않는 컨셉 아티스트 팀’으로 활용했다.

  • 워크플로우의 혁신: 감독과 아트 디렉터는 “고대 한국의 단청 문양과 SF적인 기계 생명체가 결합된 크리처를 디자인해줘”와 같은 프롬프트를 입력했다. AI는 단 몇 분 만에 수백, 수천 가지의 놀라운 시안을 쏟아냈다. 제작팀은 이 중에서 최고의 아이디어들을 선택하고 “이 디자인에 갑옷을 입혀줘”, “저 디자인의 날개를 여기에 붙여줘” 와 같이 대화를 통해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다.
  • 인간의 역할 변화: 이 과정에서 인간 아티스트의 역할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그리는 노동’에서 벗어났다. 대신, AI가 쏟아내는 무한한 가능성 속에서 작품의 전체적인 통일성을 해치지 않는 최상의 결과물을 ‘선택(큐레이션)’하고 선택된 아이디어들을 조합하여 더 높은 차원의 결과물로 ‘재창조’하는 ‘아트 디렉터’의 역할에 집중하게 되었다.

이는 AI 영화 제작의 시작이 인간의 노동력을 줄이는 것을 넘어 창의적인 선택의 폭을 무한히 확장하는 데서 시작됨을 보여준다.

 

2. 프로덕션: ‘AI 프리비즈’로 실패 없는 촬영을 설계하다

‘중간계’의 복잡한 액션 시퀀스와 웅장한 전투 장면은 어떻게 그토록 완벽한 연출을 보여줄 수 있었을까? 그 비밀은 OpenAI의 Sora와 같은 동영상 생성 AI를 활용한 ‘AI 프리비즈(AI Pre-visualization)’에 있다.

프리비즈란, 본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영화의 장면을 간단한 3D 애니메이션으로 미리 만들어보는 과정을 말한다. 과거에는 이 과정 역시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했다.

하지만 ‘중간계’의 감독은 시나리오 속 한 장면(“주인공 ‘아라’가 와이번을 타고 협곡을 돌파하는 30초 길이의 추격 씬, 드론 시점의 와이드 샷”)을 Sora에 프롬프트로 입력했다. AI는 몇 분 만에 이 장면을 실제 영화와 흡사한 퀄리티의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해냈다.

감독은 이 AI 프리비즈를 통해 본 촬영에 들어가기도 전에 수십 가지 다른 카메라 앵글과 편집 리듬을 ‘미리 실험’해 볼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가장 효과적인 연출을 찾아내고 모든 스태프가 완벽하게 동일한 비전을 공유하게 되면서 실제 촬영 현장에서의 시행착오와 예산 낭비를 ‘0’에 가깝게 줄일 수 있었다. 미래 영화 기술은 더 이상 ‘후반 작업’에만 머무르지 않고 영화 제작의 가장 앞단인 ‘설계’의 영역을 혁신하고 있는 것이다.

3. 포스트 프로덕션: ‘AI 어시스턴트’와 함께 디테일을 완성하다

영화의 최종 퀄리티를 결정하는 후반 작업(Post-production)에서도 AI는 ‘인간 아티스트의 가장 유능한 조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 AI 킷배싱(Kitbashing): VFX 아티스트들은 AI에게 “용의 비늘 텍스처 100종”, “외계 행성의 식물 오브젝트 50종”과 같이, 장면에 필요한 기본 재료들을 대량으로 생성하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인간 아티스트는 이 AI가 만들어준 고품질의 ‘재료(Kit)’들을 3D 프로그램 안에서 조합하고 배치하며 최종적인 장면을 훨씬 더 빠르고 풍부하게 완성할 수 있었다.
  • 자동화된 노동: 수많은 엑스트라를 만들어내는 군중 시뮬레이션, 배경과 인물을 분리하는 로토스코핑과 같은, 과거 아티스트들의 시간을 좀먹던 지루하고 반복적인 작업을 AI에게 맡겼다. 이를 통해 인간 아티스트들은 주인공 크리처의 표정 연기나 가장 중요한 하이라이트 장면의 디테일을 완성하는 더 창의적이고 본질적인 작업에 자신의 시간을 집중적으로 투자할 수 있었다.

이처럼, AI 시각 효과의 핵심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더 중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협업’에 있다.

 

결론: 인간 아티스트는 죽지 않는다, 다만 'AI의 감독'이 될 뿐이다

영화 중간계 AI의 제작 과정은 생성형 AI 영화의 미래 그리고 그 속에서 인간 창작자의 역할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청사진을 제시한다.

AI 시대의 아티스트는 더 이상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고독한 장인이 아니다. AI라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천재적인 신입사원에게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고 그의 결과물을 ‘날카로운 안목’으로 선택하며 최종적인 ‘책임’을 지는 ‘감독’이자 ‘디렉터’가 되어야 한다.

기술은 변했지만 이야기의 최종적인 완성도와 그 안에 담긴 영혼은 결국 인간의 ‘취향’과 ‘판단력’에 달려있다. AI는 우리에게 역사상 가장 강력한 붓을 쥐여주었다. 이제 그 붓으로 어떤 위대한 그림을 그릴 것인가는 온전히 우리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