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노 AI, '문법'은 마스터했지만 '서사'는 쓰지 못한다
수노 AI, '문법'은 마스터했지만 '서사'는 쓰지 못한다
2025년, AI 음악 생성 툴 ‘수노(Suno)’는 이제 기술적 경이로움을 넘어 일상적인 창작 도구로 자리 잡았습니다. 최신 V5 업데이트를 통해 음질은 스튜디오 수준으로 향상되었고, BPM과 키를 지정하는 등 전문가 수준의 제어도 가능해졌습니다. 분명 수노 AI 음악은 기술적으로 완벽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AI 생성 음악을 듣고 난 뒤, 우리는 종종 알 수 없는 ‘공허함’을 느끼곤 합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조화롭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을 뒤흔드는 감동이나 깊은 여운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오늘 이 글은 이 ‘음악적 영혼’의 부재 현상을 단순히 ‘AI의 한계’라는 말로 뭉뚱그리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블로그들이 감상적인 비평에 머무를 때, 우리는 한발 더 깊이 들어가려 합니다. 수노 AI가 음악의 ‘문법(Grammar)’을 어떻게 완벽하게 마스터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영혼의 핵심인 ‘서사(Narrative)’를 만들어내지 못하는지, 그 근본적인 이유를 심층적으로 분석해 보겠습니다.
1. 기술적 경이: AI는 어떻게 ‘음악적 문법’을 마스터했나?
우리는 먼저 수노 AI 음악이 이룬 놀라운 성취를 인정해야 합니다. AI는 인류가 수천 년간 쌓아 올린 음악 이론, 즉 ‘음악적 문법’을 완벽하게 학습했습니다.
- 화성학의 지배자: AI는 특정 장르(예: K-POP 발라드)에서 가장 사랑받는 코드 진행(예: 머니 코드)과 멜로디 라인의 상관관계를 통계적으로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우리가 듣기에 가장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음악을 만들어냅니다.
- 장르의 마스터: ‘펑키한 디스코’, ‘몽환적인 신스팝’, ‘웅장한 영화음악’ 등 어떤 장르를 요구하든, 해당 장르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리듬, 악기 구성, 사운드 질감을 정확하게 재현해 냅니다.
- 구조적 안정감: 노래의 기본적인 구조인 [도입]-[벌스]-[프리코러스]-[코러스]-[브릿지]의 흐름을 이해하고, 그에 맞춰 자연스럽게 곡을 전개시키는 능력 또한 갖추었습니다.
이처럼 AI는 ‘문법적으로 틀린’ 음악을 만들지 않습니다. 모든 인공지능 창작물은 기술적으로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함을 자랑하며, 유튜브 영상의 배경음악이나 카페 음악처럼 ‘기능적인’ 역할로는 이미 인간의 영역을 상당 부분 대체하고 있습니다.
2. 영혼의 부재 1: ‘긴장과 이완’이 없는 예측 가능한 멜로디
하지만 ‘음악적 영혼’은 완벽한 문법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영혼은 ‘서사’, 즉 감정의 흐름을 통해 탄생합니다. 그리고 AI는 이 서사를 만드는 데 결정적인 한계를 보입니다.
음악의 서사는 ‘긴장과 이완(Tension and Release)’의 기술입니다. 위대한 작곡가들은 때로는 불협화음을 사용하거나, 예상치 못한 변주를 통해 듣는 이의 마음에 ‘긴장감’을 쌓아 올린 뒤, 그것을 아름다운 화음으로 해소하며 ‘카타르시스’를 선사합니다.
반면, 통계적 확률에 기반한 수노 AI 음악은 본질적으로 ‘가장 안전하고 예측 가능한’ 길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듣는 이의 귀에 거슬릴 수 있는 과감한 불협화음이나, 장르의 문법을 파괴하는 창의적인 변주를 시도하기보다는, 데이터상으로 가장 ‘듣기 좋은’ 코드와 멜로디의 조합을 선택합니다. 그 결과, AI의 음악은 평온한 호수처럼 잔잔하고 아름답지만, 거친 파도가 몰아친 뒤에 찾아오는 장엄한 희열이나 감동을 주지는 못합니다. AI 작곡 한계의 첫 번째 지점입니다.
3. 영혼의 부재 2: ‘완벽함’ 속에 사라진 ‘인간적인 불완전함’
두 번째 이유는 AI의 ‘완벽함’ 그 자체에 있습니다. 예술의 영혼은 종종 ‘불완전함’과 ‘취약성’의 순간에 깃들기 때문입니다.
- 목소리의 갈라짐: 사랑하는 연인을 떠나보내는 노래의 절정에서, 가수의 목소리가 감정에 북받쳐 살짝 갈라지는 순간, 우리는 그 어떤 완벽한 고음보다 더 큰 감동을 느낍니다.
- 리듬의 미세한 흔들림: 완벽한 박자의 기계적인 드럼 비트보다, 최고의 드러머가 연주하는 미세하게 앞뒤로 밀고 당기는 ‘그루브(Groove)’에 우리는 몸을 맡기게 됩니다.
이러한 ‘인간적인 불완전함’은 계산되지 않은 진심과 감정의 증거입니다. 하지만 기술적 완벽을 추구하도록 설계된 AI에게, 이러한 ‘실수’와 ‘결함’은 제거해야 할 ‘노이즈’일 뿐입니다. AI는 완벽한 음정과 박자의 노래를 부를 수는 있지만, 의도적으로 음정을 살짝 비틀어 애절함을 표현하는 ‘밴딩’ 주법의 미묘함까지 재현하기는 어렵습니다. 이것이 AI 감성 표현의 명백한 벽입니다.
4. 영혼의 부재 3: ‘살아본 적 없는 자’의 공허한 가사
마지막으로, 서사의 핵심인 ‘가사’의 문제입니다. AI는 사랑, 이별, 좌절, 희망과 같은 주제로 그럴듯한 가사를 쓸 수 있습니다. 하지만 AI는 단 한 번도 사랑에 빠져본 적도, 이별의 아픔에 잠 못 이룬 적도 없습니다.
AI의 가사는 수백만 개의 기존 가사 데이터를 분석하여, ‘사랑’이라는 단어 뒤에 올 가장 확률 높은 단어들을 조합한 ‘언어적 시뮬레이션’입니다. 반면, 인간 아티스트의 가사는 자신의 ‘삶’과 ‘경험’이라는 유일무이한 데이터에서 길어 올린 ‘진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김광석의 노래에, 아이유의 가사에 깊이 공감하는 이유는, 그들의 가사 속에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는 진솔한 경험의 흔적이 녹아 있기 때문입니다. ‘살아본 적 없는 자’는 결코 ‘삶을 노래’할 수 없습니다.
결론: AI는 훌륭한 ‘악기’, 그러나 ‘연주자’는 인간이다
수노 AI 음악에 영혼이 없다는 비판은, 기술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AI와 인간의 역할 구분을 더 명확하게 해주는 긍정적인 신호입니다.
AI 작곡 한계는 명확하지만, 그 가능성은 무한합니다. 우리는 AI를 ‘대체 작곡가’로 여기는 대신,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다재다능한 ‘신디사이저’ 혹은 ‘악기’로 바라봐야 합니다. AI라는 악기는 우리에게 무한한 소리의 재료와 음악적 문법의 가능성을 제공해 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재료를 선택하고, 배열하고, 그 위에 나의 불완전하지만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얹어, 단 하나의 감동적인 ‘서사’를 완성하는 ‘연주자’의 역할은, 결국 우리 인간의 몫으로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