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저작성'을 증명하라: AI 웹툰 저작권을 위한 4단계 워크플로우
'인간 저작성'을 증명하라: AI 웹툰 저작권을 위한 4단계 워크플로우
2025년 AI 이미지 생성 기술의 발전은 웹툰 시장에 전례 없는 혁신과 함께 아주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내가 AI 툴을 활용하여 밤새워 만든 이 눈부신 웹툰 과연 온전히 ‘내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나의 ‘AI 웹툰 저작권’은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안타깝게도 “예” 또는 “아니오”로 간단히 끝나지 않는다. 최근 미국 저작권청의 판례와 전 세계적인 법적 동향은 우리에게 한 가지 분명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AI 시대의 저작권은 ‘결과물’이 아닌 ‘과정’을 통해 증명된다는 것이다.
오늘 이 글은 다른 블로그처럼 복잡한 법률 조항을 나열하는 대신 우리 같은 웹툰 작가 AI 사용자들이 자신의 작품에 대한 권리를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창작 과정에서 반드시 실행해야 할 ‘저작권 방어 워크플로우’ 4단계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1. 법원의 딜레마: 왜 AI는 ‘작가’가 될 수 없는가?
이 모든 논의는 ‘인간 저작성(Human Authorship)’이라는 대원칙에서 시작된다. 저작권법의 근본적인 목적은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을 보호하는 것이다. 기계인 AI는 사상이나 감정을 가질 수 없으므로 AI가 100% 스스로 만들어낸 결과물은 저작권의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 현재까지의 전 세계적인 공감대이다.
이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준 사건이 바로 ‘새벽의 자리야(Zarya of the Dawn)’라는 그래픽 노블의 저작권 등록 사례다. 미국 저작권청(USCO)은 이 작품에 대해 매우 흥미로운 결정을 내렸다.
- 인정(O): 작품의 글, 캐릭터 설정, 이미지의 선택과 배열 등 작가 ‘크리스티나 카슈타노바’의 ‘인간적인 창작 행위’가 담긴 책 전체에 대한 저작권은 인정했다.
- 불인정(X): 하지만, Midjourney를 통해 생성된 ‘개별 이미지’ 자체에 대한 저작권은 인정하지 않았다. 이미지는 인간이 아닌 기계의 결과물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판례는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AI 시대에 저작권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내가 이 인공지능 창작물에 얼마나 깊이 그리고 창의적으로 ‘개입’했는지를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2. ‘프롬프트 입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저작권이 인정되는 ‘창의적 기여’란?
많은 작가들이 “내가 프롬프트를 썼으니 당연히 내가 저작권자 아닌가?”라고 생각하지만 법원의 시각은 다르다. 단순히 아이디어를 제공하거나 간단한 명령어를 입력하는 것만으로는 ‘창의적 기여’로 인정받기 어렵다.
법원이 인정하는 ‘충분한 창의적 기여’란 다음과 같은 행위들을 포함한다.
- 선택과 배열: AI가 생성한 수십, 수백 개의 이미지 중에서 이야기의 흐름과 감정선에 맞춰 특정 이미지를 ‘선택’하고 웹툰의 컷 순서를 ‘배열’하는 행위. 이는 감독의 ‘편집’과 같은 창의적 행위다.
- 상당한 수정: AI가 생성한 이미지를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포토샵이나 클립스튜디오 같은 툴을 이용해 다른 이미지와 ‘합성’하거나 레이어를 추가하고 ‘리터칭’하며 직접 ‘덧그리는’ 등 원본 이미지를 상당한 수준으로 변경하는 행위.
- 독창적인 스토리텔링: 이미지와 별개로 작품의 전체적인 스토리, 세계관, 캐릭터의 성격, 그리고 모든 대사와 내레이션을 직접 창작하는 행위.
결국 AI 웹툰 저작권의 핵심은 ‘AI가 얼마나 일을 했는가’가 아니라 ‘인간인 내가 얼마나 중요한 창의적 결정을 내리고 실행했는가’를 증명하는 것이다.
3. 저작권을 지키는 ‘AI 웹툰 창작 워크플로우’ 4단계
그렇다면, 이 ‘인간 저작성’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 당신의 창작 과정을 다음 4단계 워크플로우에 맞춰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관리해야 한다.
1단계: 작가의 방 (The Writer's Room) - 인간 주도의 스토리 설계
- AI를 사용하기에 앞서 작품의 전체 시놉시스, 캐릭터 설정 시트, 트리트먼트(줄거리 요약) 그리고 최종 대본을 모두 ‘인간의 언어’로 먼저 완성하라. 이 문서들은 이야기의 원천이 당신의 두뇌임을 증명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다.
2단계: 아트 디렉터의 브리핑 (The Art Director's Brief) - 인간 주도의 비전 제시
- 단순히 “슬퍼하는 여자”라고 프롬프트를 입력하지 마라. 당신이 감독이자 아트 디렉터가 되어, AI라는 주니어 아티스트에게 업무를 지시하듯 구체적인 ‘아트 브리핑’을 작성하라.
- (예시) “1980년대 홍콩의 밤거리, 네온사인 불빛 아래. 20대 여성이 공중전화 박스에 기댄 채 슬픈 표정. 로우 앵글, 클로즈업 샷. 영화 <중경삼림>의 왕가위 감독 스타일.”
3단계: 편집실 (The Editing Suite) - 인간 주도의 편집과 수정
- AI가 생성한 결과물을 그대로 사용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수정하고 합성하는 과정을 거쳐라. 이 과정을 반드시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 AI가 생성한 캐릭터 이미지와 배경 이미지를 분리하여 재배치하는 과정.
- 인물의 표정이나 옷의 주름 등, 어색한 부분을 직접 수정하거나 덧그리는 과정 (레이어가 살아있는 작업 파일 보관).
- 직접 만든 말풍선과 효과음을 삽입하는 과정.
4단계: 프로덕션 바이블 (The Production Bible) - 모든 과정의 기록
- 위의 모든 과정(시나리오, 프롬프트, AI가 생성한 여러 시안, 최종 선택된 이미지, 수정 과정이 담긴 PSD 파일 등)을 하나의 폴더에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프로덕션 바이블’을 만들어라. 이것은 훗날 발생할지 모를 저작권 분쟁에서 당신의 창의적 기여를 증명해 줄 가장 결정적인 ‘증거 자료’가 된다.
4. 플랫폼의 시선과 미래
네이버웹툰이나 카카오페이지 같은 플랫폼들 역시 AI 그림 저작권 문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미 많은 플랫폼들이 AI 사용 여부를 의무적으로 표기하도록 하고 있으며 단순히 AI 생성물을 나열한 ‘저품질 콘텐츠’는 연재 승인을 거부하는 추세다.
결국 플랫폼과 독자가 원하는 것은 AI 기술의 현란함이 아니라 그 기술을 활용하여 작가만의 독창적인 이야기와 그림체를 보여주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함께 알아본 ‘저작권 방어 워크플로우’는 단순히 법적 권리를 지키는 것을 넘어, 당신의 작품이 ‘영혼 없는 AI 생성물’이 아닌 ‘당신만의 작품’임을 증명하는 과정 그 자체다.
결론: AI는 붓일 뿐, 화가는 당신이다
인공지능 창작물의 시대, 저작권은 가만히 앉아서 얻어지는 권리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설계하고 증명해야 하는 ‘전략’이 되었다. AI를 ‘대필 작가’나 ‘대신 그려주는 화가’로 생각하는 순간, 당신은 저작권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AI를 나의 비전을 실현시켜 줄 가장 강력한 ‘붓’이자 ‘물감’으로 여기고 모든 창작의 과정에서 ‘화가’로서의 주도권을 놓지 않을 때, 비로소 당신의 작품은 온전히 당신의 것이 될 것이다.